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속도가 다를 때
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속도가 다를 때 우리는 괴롭다. 마음은 어떤 곳인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바뀐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하루에 약 6천번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우리가 하루에 6천가지의 일을 해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일의 난이도에 따라서는 6가지도 어려울 수 있다. 그만큼 마음과 현실은 다른 공간이라는 것이다. 마음은 시간을 초월한다.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면 후회와 원망을 하더라도, 또 현실로 돌아와서 현실 걱정을 하다가도, 미래에는 어떨지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은 공간도 초월한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과거에 갔었던 추억이든 고통이든 기억 속의 그 장소들, 그리고 앞으로 가고 싶은 미래의 장소들을 오간다. 즉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곳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까? 우리는 순간이동을 할 수는 없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신 모습을 보여주셨다.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게 될 미래에는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서는 시공간의 제약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마음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현실에서도 바쁘게 마음처럼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답답하고 느리더라도 마음은 미래를, 주님 오실 날을, 천국을 바라볼 수 있기에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과 현실에는 특징과 차이가 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만일, 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속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현실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여, 곧 실망하거나 우울하거나 포기하게 될 것이다. 현실을 고통스러운 곳으로 인식하여 현실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마음과 현실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 나의 중심으로 보자면 마음이 더 가까우니 내 마음이 중요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신가? 하나님도 마음이 중요하신가? 마음이 중요하시겠지만 마음에서 그치지 않으셨다.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시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현실로 보내셨다. 예수님도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주시고 현실에서 사역하셨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내 마음 보다는, 내 현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마음에만 머무려는 것을 우리는 현실 부적응이라 하고 더 나아가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나님은 현실에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속도에서 차이가 있을 때, 고통받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속도에 마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자. 생각을 버리고 또 버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불안의 감정 대신에, 신뢰와 감사와 평안의 마음으로 채우자.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자. 현실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내자. 현실 속에서 믿음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미소교회 : misochurch.kr/
* 미소교회 유튜브 : http://youtube.com/@pajumiso
* 미소심리상담센터 : misocounse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