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한 단상

아무도 얕잡아 보지 마라.

빅 라이트 2024. 1. 12. 22:51

   우리가 살면서 흔히 '상처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수용받지 못하고 거절감을 받게 되었을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나 자신 또는 타인에게 찾으면서 주로 약점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약점이 있으면 거절당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약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며 그러한 약점이 있는 나 자신도, 내가 당했던 경험과 똑같이 거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또 다시 상처를 입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외부로, 타인에게로 원인이 돌린다면 늘 약점이 있어 보이는 타인에게 냉담하며 하대하며 공격적일 수 있다. 그래서 약점이 있으면 우리는 은연 중에 얕잡아 보는 면이 있는 것이 사람의 솔직한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얕잡아 보는 렌즈'를 계속 끼고 있게 되면 정작 신뢰해야할 대상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외면하게 된다. 정작 믿어야할 하나님도 내가 보기에 나에게 힘이 되는 것 같지 않게 보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내가 인식하지 못할 뿐인데도 불구하고 내 수준에서 하나님을 얕잡아 보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주시고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데 내가 또다시 '거절'하고 나는 또다시 하나님에게서도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고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타인도 나에게 선의와 호의가 있음에도 그에게 어떤 내가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내 눈에는 약점으로 보여서 그를 얕잡아보며 '거절'하였다고 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나에게 유익을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을 나 스스로가 또 다시 가로막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고 세상에서 '거절' 당했다고 슬퍼할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결국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나와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그러한 나를 나부터 환영해주고 격려해주지 못하고 '거절'하기 일쑤라면 도대체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 있기나 할까? 가족이라해도 다 자신의 인생이 각각 있는지라 한계가 있으니, 하나님 외엔 안계신 것 같다.

    그렇기에, 이러한 '거절'의 역사, '얕잡아 보는' 역사, 악순환의 역사를 계속해서 쓸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신뢰의 역사, 존중의 역사, 수용의 역사를 써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누군가를 은연 중에라도 '얕잡아 보는 렌즈'를 그 렌즈가 자신을 향하든, 타인을 향하든, 하나님을 향하든 상관없이 그러한 부정적 시각의 렌즈를 벗어내길 바란다. 그것은 죄다. 그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하나님이 주시려는 축복과 나를 막아서는 것이며, 나와 타인의 우정과 신뢰도 금이 가게 하는 것이다. 그 죄를 벗어낸 그 자리에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렌즈, 말씀의 렌즈, 하나님 나라의 렌즈로 바꾸어보자. 우리가 바른 마음을 먹고 우리의 보이는 것을 달라지게 하면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인생도 달라지리라. 할렐루야!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1)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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