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재물(사물)이 아닌 사명 중심으로 사는 삶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듯이, 사람을 보면 저마다 자신도 모르게 발달된 영역이 있다. 눈치를 많이 보는 환경 속에 자란 사람들은 눈치가 발달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거나 눈치를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모든 현상과 상황을 늘 사람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마음의 외벽이 사람들로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사람은 어떤 사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고 사람들이 편안해 해야 나도 편안해 하는 타인 중심의 삶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타인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타인을 조종하려고 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또는 너무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여,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타인의 마음도 모르고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이성적으로만 판단한 나머지 사람 냄새가 없는 냉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나쁜 표현이긴 하지만 "물욕이 많다"는 말도 있듯이, 재물,사물 등에 대한 욕심만 발달하여 그것에 집착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모든 판단이 재물이나 사물 위주로 판단하기에 사람도 도구화 되기 쉽고 세상의 경계가 나 자신을 벗어나서 재물이나 사물이 된다. 그래서 자신 소유의 재물이나 사물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것 같으면 사납게 반응이 나타나는 사람의 경우, 심리적 외벽이 재물이나 사물에 선이 그어져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삶은 무엇일까? 사람이나 재물(사물)이 아닌 사명에 집중하는 삶이다. 사명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고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발달된 더듬이, 촉, 눈치, 욕심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나 무언가 이득, 재물(사물)을 얻는 것으로부터 거두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집중하자. 사도 바울이 회심 전에 성도들을 박해할 때 예수님이 "왜 나를 박해하느냐"고 하셨듯이, 예수님은 오늘도 성도들 안에서 살아계신다. 또한 예수님의 생명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오늘도 성도들을 부르신다. 우리도 그렇게 부름을 받았다. 먼저는 살아계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갈 것이고 또한 우리 삶의 목표를 예수님께 헌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확장시키는 것에 두자. 그러한 건전한 신앙을 중심으로 삶을 보게 될 때, 우리의 심리적 외벽은 하나님이 선을 그으시는데로 하나님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다. 나 자신도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나에게 맡겨두셨을 뿐인 것이고 사람이든 재물이든 사물이든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관점에서 보게 된다. 사람을 더듬던 나의 눈치, 더듬이는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재물과 사물 중심으로 선을 그었던 것도 하나님께로 옮겨진다. 결과적으로 사람이든 사물에게든 내 안에서 밖으로 나와 있던 심리적 외벽(선)이 나 자신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고, 사람과 세상을 향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역이기에 매사에 조심스럽고 정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밖으로 꺼내 놓았던 유무형의 우리의 관심사든 눈치든 더듬이든 욕심이든 모든 것을 내 안으로 거두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복종시키자.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성도로서의 삶으로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 나아갈 것이다. 할렐루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4-5,15)"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o.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