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할 수 있는 용기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는 살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살라고 하셨다(마5:37). 그러한 표현은 의무이자 책임인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이 세상의 힘있는 자들을, 통틀어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시146:3). 그 대신 하나님을 자기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께 기대를 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다(시146:5). 그렇다면 우리의 실제의 삶은 어떠한가?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말씀대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 대해 침묵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 늘 호소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도와달라는 도움에 대해 오히려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떤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서 침묵하며 사람에게 늘 호소하고 날 도와줄 귀인을 찾고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는 한탄의 말씀처럼 이 시대에 믿음있는 자가 정작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제가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때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믿음을 더 부어주시고 보내주십시요. 주님께서 붙들어주십시요' 대답하고 기도할 수 있어야하겠다.
그렇기에, 이 글의 제목인 침묵할 수 있는 용기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 침묵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더이상 사람에게 도움을 외치지 말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자.
또한, 그렇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 자신의 힘도 의지하지 말자. 주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가 상처가 났을 때 자신의 혀로 자꾸 상처를 핥는 바람에 감염이 되고 곪고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개의 입장에서는 힘들더라도 그냥 상처를 내버려둔다면 피가 멈추고 진물이 나고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을 수 있는데, 그것이 가렵고 따갑다고 하여서 핥는 순간, 그 순간에는 시원함을 느낄 수는 있으나 입안의 온갖 세균이 상처를 통해 침투한다는 것이다. 어처면 우리도 우리의 상처와 문제를 자꾸 들여다보는 것이 우리의 상처와 문제를 더 키우는 길인 것은 아닌지 통찰이 필요하다. 오히려 우리의 모든 상처와 문제를 인식하지만 더 이상 관심과 에너지를 쏟지 말고 우리의 시선을 거두어 하나님께로 둔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에 따라 우리의 상처와 문제도 회복되고 제자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이 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15:34)"이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홀로 외로움과 고독감과 절망을 견디어 내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결국 죄를 이기시도록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절규 앞에서 가슴이 무너지시지만 침묵하셨다. 그리고 그 침묵이 결국 우리 모두를 살렸다.
우리의 모든 상처와 문제, 우리의 필요, 갈급함은 어쩌면 너무 떠들어서 해결이 안되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길을 더욱 견고히, 전심으로 가기 위해 사람에 대해, 나의 모든 아픔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할렐루야!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사30:15)"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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