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욕구를 컨트롤 하자!
사람은 타인을, 상황을, 무언가를 컨트롤하고 싶은 욕구, 다른 말로 통제 욕구가 좌절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결과 우리는 좌절하고 낙심하고 화를 내거나 화를 참느라고 화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컨트롤 욕구의 좌절에 따른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컨트롤 욕구 자체를 포기해야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컨트롤 욕구 자체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하나님이 주신 여러 욕구들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욕구이든지 그것을 무한정 충족시키려 할 때 문제가 생긴다. 먹고자 하는 욕구, 즉 식욕을 무한정 채우려한다면 건강상의 문제가 반드시 생기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욕구이든지 마찬가지다.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결핍이나 과잉이 문제이지, 적절한 수준에서는 욕구 충족이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살라고 창조하신 시스템(기관)이자 도구이다.
그렇다면 어떠할 때 컨트롤 욕구가 문제가 될 것인가? 정당하지 못한 욕구, 정당한 선을 넘어서는 욕구가 문제가 될 것이다. 컨트롤을 하고자 하되, 타인의 영역이나 하나님의 영역에 침범을 하여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면 문제가 된다. 타인의 삶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상처를 입히거나 타인의 거절감에 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속한 영역인가 타인의 영역인가가 아주 중요한 한계가 될 수 있으며, 나의 영역에 속하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컨트롤 욕구를 충족하고자 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있다.
또한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내가 무언가 컨트롤 하고자 하는 목표가 과연 달성 가능한 과업인지 막연한 헛된 공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중요하다. 우리가 걱정하는 90%이상의 문제가 불필요하거나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가 스트레스 받는 그 문제, 해결안되고 통제가 안되서 걱정되는 그 문제가 실은 현재 존재하지도 않고 실재로 가능하지도 않는 문제를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컨트롤 욕구를 내가 어떻게 적절하게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나의 삶, 영역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집중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컨트롤할 일을 컨트롤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 분별의 지혜도 필요할 것이고 컨트롤을 정확히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리고 컨트롤에 있어서 우리가 어떠한 감정에 치우지지 않고 무심하게 그리고 객관적이고 지혜롭게 감당하기 위해서는 문제와 내가 떨어져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가능한데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컨트롤을 잘하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님의 컨트롤에 나 자신에 맡길 때, 주님께서 하늘의 지혜로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이다. 일깨워주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슨 일이든,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든 내 뜻, 내 마음대로 컨트롤 하려다가 좌절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함으로, 내려놓음으로, 주권을 포기하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성령의 감동과 조명하심에 따라 모든 일에 결국 지혜롭게 대처할 줄로 믿는다. 할렐루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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