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
우리는 때론 누군가를 비판한다.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한다. 누군가를 원망한다. 그 사람때문에 내가 고통을 겪는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다(요 8:3-11). 아무도 돌로 치지 못하고 돌을 손에 든 채 현장을 빠져 나갔다. 예수님마저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 중에 누가 누구를 향해 당신은 틀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세상 뉴스의 정치면을 보더라도 늘 누구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누가 잘못되었다는 정죄만 가득하다. 일상에서 보더라도 이건 누가 잘못했다는 비판과 또한 이건 누가 잘못한 결과라며 원망이 가득하다. 정말 그럴까? 4자 성어 중에 '자격지심'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부족감을 느끼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격지심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에 주목을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늘 보는 것은 부족한 면인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타인을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인의 부족한 면만 보일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이 바로 타인을 비판하는 것이다.
타인을 원망하는 마음은 어떠한가? 문제의 원인은 타인에게 있고 결과에 따른 영향을 내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내가 타인에게 종속되어 있거나 타인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종속상태를 인식하고 있다면 타인을 원망할 수 있을까? 결국 종속상태를 인정하지도 않고 인정하더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이다.
옛말에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도둑 눈에는 도둑만 보인다'는 말도 있다. 요즘에야 개도 사료만 먹이고 좋은 먹이를 준다. 과거에는 사람 먹을 것도 없었기에 개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똥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배고픈 개는 늘 똥만 찾고 그것만 보인 것이다. 사람이 자신이 무얼 중요하게 여기든 그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만 세상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더이상 누군가를 비판하지 말자. 우선 자기 자신부터 자책하지 말자. 성숙한 반성을 하자. 나도 늘 실수하고 잘못하는 사람임을 인식하자. 그러면서도 존중하자. 그러할 때 타엔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 부족함을 알지만 존중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타인을 원망하지 말자. 나의 문제 해결과 타인을 연관시킨 나의 미성숙함과 의존욕구를 인정하자. 앞으론 의존욕구 대신에 독립욕구를 자신의 일에 적용시키자. 문제해결을 스스로 하도록 노력하자. 그럴때 남을 원망하기는 커녕, 남도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고 그것이 힘든 줄도 알기에 남의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자. 그럴 때 우리 눈에는 늘 하나님의 일하심, 성실하심, 긍휼하심만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여드리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풍성해질 것이다. 할렐루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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