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한 단상

괴롭힘 대신 돌봄으로

빅 라이트 2025. 1. 11. 14:16

  우리는 때론 자신을 괴롭힌다. 못마땅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 이것밖에 안되지, 왜 못하지, 왜 안되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때론 남도 괴롭힌다. '어떻게 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한테 이렇게 밖에 못해? 내가 우습나' 등등의 생각으로 말이다. 때론 약자, 약한 대상도 괴롭힌다. 간혹 애완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때론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동료를 집단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모든 괴롭힘들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가?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겠다는 마음이 근본에는 있는 것이다. 처벌을 함으로써 그 대상이 내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하도록 또는 하지 않도록 조종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악은, '괴롭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저마다 다 자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것이다. 어쩌면 미성숙한 자율성일 수도 있다. 자율성에 대한 범위와 경계가 합법적, 상식적이지 않고 불법적, 비상식적,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 자율성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책임감이라고 본다.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나의 책임은 다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맹목적인 책임이 아니라 돌봄에 대한 책임이다. 자신이 못마땅할 수록, 타인이, 사회가 못마땅할 수록 괴롭히며 처벌하며 질책할 것이 아니라,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 못마땅한 이유는, 나든 타인이든 세상이든 아직 미성숙하여서, 부족하여서 발달되지 못해서이다. 미성숙한 것은 성숙시켜야 한다. 부족한 것은 만족하도록 채워야한다. 모든 영역에서 발달과 발전을 시켜야한다. 그러려면 관심을 가지고 양육자의 심정으로 육신적, 정신적, 영적, 환경적, 물질적인 모든 면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따뜻한 돌봄이 있을 때 사람은 자랄 수 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누구든 괴롭히지 말고 돌보기를 바란다. 자신을 돌볼 때 자연히 자신이 더 좋아질 것이고 타인을 돌볼 때 타인을 돌보는 자신도 덩달아 자라게 된다. 사회를 돌봄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무책임한 날선 공격, 원망이 아니라 돌봐야할 환경으로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환경, 우리의 꽃밭, 텃밭은 돌보지 않으면 황무지가 될것이고 잘 돌볼 때 아름다운 정원, 싱싱한 텃밭, 따뜻한 환경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3-5)"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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