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더러운 것은 나를 해칠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 청결 의식없이 방치한다면 나의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더러움은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혐오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 어떤 행동이 더렵다고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때론 헛기침을 하여 불편한 기색을 비치기도 하고 때론 얼굴을 돌려 외면하거나 그 자리를 피한다. 피할 수 없으면 대상이나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다.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러움을 깨끗하게 바꾸려는 나의 노력이 늘 성공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사람과의 갈등, 상황과의 갈등만 일어날 뿐이다.
더럽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 내가 용납이 안되고 수용과 이해가 안되어 거부감이 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방식, 생각, 태도, 행동을 보면 불편하다. 나와 다른 것이 불편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살아간다. 다르다는 것은 대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나를 드러내어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느니 그냥 저 쪽, 저 사람을 따라가던가 맞춰주는 것이 편하다고 느끼기도하며, 또는 저 사람을 바꿔서라도 나와 같게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다양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보면 똑같은 무늬는 단 한 개도 없다고 한다. 똑같은 종류의 꽃, 나무, 식물이어도 모양이 다 다르다. 심지어 쌍둥이로 태어나도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다. 하나님은 다양성, 즉 다름의 하나님이시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것까지도 인정해주시고 수용해주신다. 그런데 왜 사람인 우리는 나와 다른 것에 불편해하느냐는 말이다. 그 이면에는 이기심, 자기중심성, 자기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은 이해가 안되고 수용하기 힘들고 어렵더라도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나의 마음의 그릇을 넓혀보자. 그 시작은 내가 외면하고 싶고 거절하고 싶고 혐오감이 일어날 때, 정면으로 응시해보는 것이다. 더럽다고 느껴질 때 그 더러움을 음미해보고 머물러 보는 것이다. 무엇이 다르고 어느 지점에서 수용이 되지 않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 힘든 수고와 고통이 이기적인 내 마음을 깨트리고 좁은 그릇을 두들겨서 넓혀주게 되며, 그러한 몸부림 후에는 나에게 성장을 가져다 주고 자유와 수용과 확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님 안에서 모든 담을 넘으며 모든 것을 극복해내며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소유하길 원한다. 할렐루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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