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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한 단상

완벽을 추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완벽은 허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유한하다. 힘과 에너지와 시간을 무한대로 쓸 수 있어야 완벽해질까, 유한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느 특정 분야에서는 완벽해 보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이자 상대적인 평가이고, 타인의 시선이나 시대나 문화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여지가 늘 있는 것이다. 설령, 자신의 분야에서 완벽을 추구하며 실제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만족할 수 있을 지라도, 삶의 다른 영역,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수준보다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은 저지르지 않는 심각한 범죄(성, 마약 등)도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 그러한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많은 이유도 그러하다. 

  어쩌면 우리가 '완벽'이라고 여기는 것도, 단지 나와 우리의 불완전함, 열등함, 우둔함, 세련되지 못한 투박함 등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만족 상태를 좋아하는 것뿐이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완벽'이라는 것은 최종적인 의미인데, 우리 삶에 최종적으로 멈춰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현 시대에 완벽하다 여기는 것도 시대가 조금만 지나가도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무시받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완벽'이라는 어떤 결과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보다는, '발전', '노력', '성숙' 등 과정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를 권한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중"이다(빌 3:12). 우리는 늘 과정 속에 있다. 결과는 하나님께, 하늘에, 예수님께, 종말에 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온전함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있는 존재이지. 무언가를 끝낼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것의 끝을 정하시고 최종적인 가치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 유일하시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절대자이자 창조주인 하나님께 어울리는 단어이지, 상대자이자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차라리 '노력'이라는 단어가 인간에게 어울린다. 그러므로 되지도 않을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도 죽이고 주변사람에게도 폭군처럼 살아가지 마시고,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과정을 즐기고 노력을 소중히 여기고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현존자가 되기를 바란다. 할렐루야!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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