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소위, '센 척'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센 척이라고 표현함은, 실제로는 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가 너 보다는 세다(잘 한다, 잘 안다)',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는 낫다', '나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최상위권 레벨이다' 이러한 것들을 자신감의 근원으로 삼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을 자신감의 근원으로 삼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 부각이 될 때와 아닐 때를 보면 된다.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밝히든 아니면 은근히 부각되게 하든 그러한 것으로 어필한다. 하지만 정말 강자는, 어떠한 조건이 나에게 있든 없든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을 보면, 결국 제자들도 모두 배반하고 도망가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만 계셨다. 하나님 마저도 침묵하셨다. 온 세상에서 내가 큰 문제이니 나를 죽여야된다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힘이 없거나 도망가 있고 오로지 그 상황을 홀로 겪어내야 하는 고독한 외로움 속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만 계셨다. 자신의 능력 조차도 내세우지도 사용하지도 않으셨다. 철저한 무기력한 상태,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지는 최악의 수치스러운 상태, 버림받은 상태, 침뱉음과 비웃음 당하는 모욕적인 상태에서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외면하거나 떠나려고 하시지 않고 그러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머물러 계셨다. 이처럼 진정한 강자는 뭐가 없어도 버틸 수 있는 자다. 우리는 뭐가 없어도 오로지 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늘 뭐로서의 나, 뭐를 가진 나, 뭐를 할 줄 아는 나, 뭐를 이루어낸 나로서 우리는 자신감의 근원을 삼지는 않는가? 우리는 약하다. 예수님처럼 강할 수 없다. 센 척을 하는 대신에, 약함을 인정하자.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그 수모를 겪으신 것이다. 우리가 강했으면 예수님도 오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러한 고초를 당하실 이유도 없었다. 순전히 우리가 약해서 대신 당하신 것이다. 왜? 우리는 못견디고 도망가거나 자포자기하거나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힘으로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 보겠다고 제발 센 척을 하지 말고,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자. 매순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불철주야 노심초사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강하시기에, 약한 우리 안에서도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는다. 실제로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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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so.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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