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유한하다. 사람의 신체만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소화효소의 한계치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며 감당하기 벅찬 식습관, 생활습관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된다.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치 즉 총량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어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면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일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논리적으로는 수긍이 가능한 것 같다. 비슷한 논리로, 나는 사람에게 '놀이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이 인생을 통틀어 놀아야 되는 물리적, 심적 만족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려서 일찍 채워지면 다시 말해, 어려서 신나게 많이 논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어서는 노는 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어려서 많이 놀지 못한 사람은, 속된 말에 '늦바람이 들었다'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들어서 노는 일에 푹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꼭 나쁜 뜻으로만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자신의 취미생활, 운동생활 등을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누가봐도 저 사람은 저기에 빠져있다고 느껴질 만큼 몰두 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필자의 결론은, 사람은 놀아야 된다. 외국 속담에도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놀아야 정신적, 육체적 기능이 활성화 되고 자신의 일이나 대인관계에서나 건전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면 놀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나는 놀이와 영성이 상관 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놀이의 하나님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땅에 아무 것도 없을 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수면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창1:2). 어떤 대상이 있어서 움직이신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은 원래가 그런 분이신 것이다. 아무것이 없어도 완전한 모습으로 계실 수 있다. 아무것이 없어도 무엇이 다 있는 것처럼 이리 저리 다니실 수 있다. 심지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을 배반하였을때도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마치 산책이라도 하시듯이 거니신다(창3:8). 하나님은 혼자서도 어딜 다니는 것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아담과 하와를 만나기 위해 거닐으시며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알고보면 참 재미있는 분이다. 나는 우리의 신앙도 무슨 일을 하듯이, 무미건조하게 의무사항만 지켜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고 본다. 가족 안에서의 가정생활을,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생활을, 일을 하듯이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이미 가족이 아니며 공동체도 아닌 것이다. 가족과 교회 안에는 사랑과 애정과 헌신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힘들지 않게 유지시켜 주는 요소가 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가족과 놀때, 교회의 성도와 놀때 우리는 친밀감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놀 때 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우리의 예배가, 기도가, 말씀묵상이, 전도가, 봉사가, 헌신이 하나의 놀이가 될 때 예배하는 즐거움, 기도의 기쁨, 말씀의 감격, 전도의 보람, 봉사의 감사, 헌신의 감동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성도님들이여! 어느 때이건 잘 놉시다. 할렐루야!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시 68:3-4)"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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