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중에 신대원 동기 친구를 만났다. 특별했던 것은, 10 여년 전에도 어느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나서 그 친구가 앞으로 감당할 해외 선교에 대한 이야기, 나의 사역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을 나누었던 추억이 있는데, 그 선교를 벌써 10년 째 감당하면서 힘든 이야기, 좋은 이야기, 사역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똑같이 그 대학교 캠퍼스에서 나누게 되었다. 10여년 전에는 내가 거기서 공부를 해서, 이번에는 그 친구가 거기 학회를 참석하기 위해서 이유는 달랐지만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30대 중반이었지만, 앞으로의 사역과 삶에 기대가 있었던 그 풋풋(?)했던 시절의 그 설레임이 떠올라서 좋았다. 이것을 추억이라고 할 것이다.
추억은 옛일을 되돌아 보는 것이나 우리가 주로 좋은 기억을 떠올릴 때 ‘추억’이라는 단어를 쓴다. 힘들고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말하면서 ‘추억’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억, 경험, 트라우마 등등의 단어를 쓰는 것 같다. 그러면서 그 추억이 다시금 순수했던 시절, 초심을 생각하게 하였고 다시금 현실에 돌아와서도 현재에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렸을 때의 좋은 감정들을 삶에서, 사역의 현장에서 재현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하나님에 대한 ‘추억’이 있는가? 보통 교회에서 ‘첫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한다.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합시다! 표어와도 같이 사용한다. 나에게도 첫 사랑, 추억이 있다. 그런데 생각나는 것은 주로, 힘들거나 절막했던 상황이나 시절을 겪어 낼 때 한번씩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위로해 주신 추억들이 주로 다 였다. 물론 한창 성령 충만하던 시절에는, 기도를 해도, 찬양을 해도, 말씀을 보아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격하기도 하였으나 길게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위로와 감동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추억을 힘든 시절, 고난의 시절 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행복한 순간에도 만들 수 있지는 않는 것인가? 늘 힘들 때만 하나님의 은혜를 더 경험하게 되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하나님과 힘들 때 이겨내는 전우애 같은 추억 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추억, 하나님과 동역하는 추억,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성도님들에게도 ‘힘들 때 하나님을 붙드세요’만이 아니라, ‘좋을 때 하나님과 더 기뻐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할렐루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야고보서 5:13)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o.church
'목회 한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안을 얻는 법 (2) | 2023.05.11 |
---|---|
우리는 누군가의 꽃이 되고 싶다. (0) | 2023.05.06 |
권위에 순종하는 자 (1) | 2023.04.20 |
교회생활은 '사회생활'인가, '하나님의 사회생활'인가? (0) | 2023.04.14 |
사람이나 재물(사물)이 아닌 사명 중심으로 사는 삶 (0) | 2023.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