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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한 단상

때릴수록 커진다.

언젠가부터 국내외 정치계에서, '때리면 때릴수록 커진다'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해당 당사자의 존재감을 꺾어놓기 위해서 이런 저런 공격을 하면서 누르려고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오히려 상대방의 존재감만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공격에 눌림을 당하거나 방어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덤덤하거나 무시하면서 태연히 버틴다면 당황하는 쪽은 오히려 공격하는 입장이며 그러면 한창 더 강한 공격을 퍼붓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오히려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공격 대상자가 오히려 존재감만 커지더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안그런가? 우리는 늘 영적 전쟁 속에 살아 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 관계, 사건, 상황은 다 영적인 존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또한 육적이지 않은 것도 없다. 우리는 영과 육이 교차하는 곳에서, 한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깨어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내지 않으면 언제라도 넘어지고 치우치기 쉬운 우리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우리는 영의 존재들이라, 영이 다르면 뭔가 서로 불편함이 있게 된다.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세계관이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세세한 모든 것까지도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같은 기독교인 안에서도 시각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적인 도전들에 늘 맞닥뜨리게 된다. 신자에게든, 불신자에게든 마찬가지다. 나와 영적으로, 생각이나 견해나 노선이 달라도 편안함과 존중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보다는 미성숙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때로는 정면으로 능동적인 공격으로, 때론 교묘히 수동적인 공격으로 유무형의 매를 맞게 된다. 매를 때리는 이유는, 왜 나와 생각이 다르냐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도 수많은 매를 맞으셨지만, 그로 인해 견해나 주장을 바꾸지 않으셨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성경 속 수많은 순교자들도 그러했다. 우리도 수많은 매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믿음 안에 있을 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 수록 누가 강해지겠는가? 견디는 내가 강해지는 것이다. 내가 강해져서 무엇을 할 것인가? 자랑할 것인가? 아니다. 강해진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치유와 회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늘 생각하는 바이지만, 사랑은 강자가 할 수 있다. 정직도 강자가 할 수 있다. 사랑은 지혜자가 할 수 있다. 정직도 지혜자가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약하고 미련하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강하시고 지혜 그 자체이시다. 그러니, 매를 맞을 때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을 때리는 매가 되기를 바란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강하시다. 오히려 주님은 내가 힘들 것을 다 아시면서도 나를 강하게 하시고자 때론 공격과 고난을 허용하신다. 그렇더라도 결국 다 견디게 하시고 오히려 연약하고 미련한 나를 통해, 주님의 강함과 지혜를, 사랑을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드러내실 것이다. 할렐루야!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7)"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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