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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한 단상

흡족한 만족을 누리려 하지 마라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사람에게는 "쾌락의 법칙"이 있다고 보았다. 사람은 불쾌를 피하고 쾌락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람은 모두가 '쾌락'을 위해 산다. 다만, 무엇을 쾌락의 대상으로 또 그것을 어느 정도로 삼을 것이가의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본다. 신앙적으로 표현하자면, 죄인으로 쾌락을 느끼며 사는 삶을 추구할 것인가, 죄용서받은 의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기쁨을 쾌락의 원천으로 삼을 것인가의 차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해도, 건전한 것에서 쾌락을 찾을 것인가, 불건전한 것에서 찾을 것인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수준이 낮은 정도에서 쾌락을 추구할 것인가, 높은 수준의 쾌락을 추구할 것인가도 성숙도에 따라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제3의 쾌락을 말하고 싶다.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쾌락이다. 쾌락을 얻기 위한 무언가를 향해 자동적으로 달려들던 행동을 멈추는 쾌락(?),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자동적으로 달려들 던 것이 죄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독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건전한 영역, 특히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말씀, 기도, 전도도 강박적으로 그 행동을 해야지만 마음이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종교 중독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무슨 일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직업적인 것이든, 신앙적인 것이든 완벽하게 해내려는 완벽주의도 겉으로는 건전한 것으로 보이나 사실 건강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인간은 연약함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함으로부터 오는 좌절과 아픔을 달래기 위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에서 아주 확실하게 결실을 내고자 하는 심리일 수 있다.

   그러면 왜 멈추어야 하는가? 우리가 흡족하지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그 부분, 그 영역, 마음의 그 부분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다. 늘 반복적으로 불완전하고 허술하고 어설프게 하려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매사에 완벽하게 하려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무언가 나의 영역을, 나의 것을 분명하고 확실히 확보하겠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은 선포하신다. 나 자신도, 나 자신의 인생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할 것이나, 미진한 부분, 흡족하지 못한 부분,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고 그 공백만큼 하나님의 자리로 여기고 하나님께 나와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인이 될 수 없으며,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이자 소작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영원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신앙적인 것에서는 비신앙적인 것에서든 흡족히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자. 흡족히 만족을 얻을 때까지 고군분투하지 말자. 혈기도 부리지 말고 스트레스도 받지 말고 이상한 중독, 퇴행으로도 도망가지 말자. 걍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맡기자. 정직하게, 우리의 유한성과 한계를 인정하자. 또한 하나님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인정하자. 유한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여정에서의 부족함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o.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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