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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한 단상

크리스천들 '의'경쟁

  나는 모태신앙이자 크리스찬으로 지금까지 사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만난 목사, 장로, 집사, 권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합해서 관찰되는 것 중에 하나는 마치 '누가 옳으냐'의 싸움을 은연 중에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크리스찬이라면 그것도 신앙심이 깊거나 충성도가 높다면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체험, 간증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인 것 같다. 각자 만난 하나님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들이 다들 있는 것이다. 100명의 신실한 크리스천이 있다면 100개의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을 힘있게 말로든 행동으로든 표현한다고 하여서, 나의 확신을 접고 그 사람의 확신을 따라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은연 중에라도, 권위의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목사가 된 지금, 그동안 십 수년을 사역하면서 교역자 사이에서도 웃기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누가 더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느냐가 마치 그 사람의 영력인 것 마냥 우쭐하거나 업신여기거나 부러워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들을 만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목사님은 무엇을 해낼 수 있느냐'는 듯이 은근한 무게 재기가 있음도 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것이냐 생각해보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엡 2:8-10에서도, 믿음의 시발점부터가 우리의 행위(성과, 역량)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물이며, 우리를 구원하심은 선한 일을 위해서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은연 중에 벌이는 '누가 옳으냐'의 싸움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미 했던 것이다. 눅9:46-48에서, 제자들이 '누가 크냐'의 논쟁을 벌일 때 주님은 어린 아이 하나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섬길 줄 아는 가장 작은 자로 스스로 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고 하셨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누가 옳으냐'의 은연 중의 싸움에 오랫 동안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섬김도, 사랑도 없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자기 '의'만 가득했는지 모른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시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부라고 하신다. 우리가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더 사랑하는 싸움, 더 섬기는 싸움, 더 축복하며 중보기도해주는 경쟁, 더 작은 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하길 바란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힘있게 세워지리라 믿는다. 할렐루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12:30-31)"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o.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