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이든, 무엇을 주고 받기 위해 한다고 볼 수 있다. 단, 그 목적이 순수한 것일 수도, 거래하기 위한 것일 수도, 불공평한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모두 거래관계라고 보는 것이 속편할 것 같다. 예수님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고 이것을 소위 '황금율'이라고 부른다(마7:12). 남에게 무언가를 대접받고자 하기 전에, 나는 무엇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가를 먼저 돌아보고 먼저 남에게 대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것이 철저히 무언가 이득을 주고 받는 거래관계일지라도 먼저 잘 주어야 내가 잘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남이 나에게 왜 이런 대접을 하느냐로 화를 내기 이전에, 나는 남을 어떻게 대접하였는가를 보고 먼저 내가 해야할 것을 해야하는 것이고, 그래야 최소한 내가 한 만큼이라도 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관계에서의 문제에서도 상대방이 나에게 왜 이러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나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였는가를 먼저 돌아보는 지혜가 있기를 바란다. 그 문제가 다름 아닌 내가 자초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둔다고 하신다(갈6:7).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정성과 헌신으로 심으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삶에 있어서든, 신앙에 있어서든, 가능한 무엇을 안하려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가능한 유익한 무엇을 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일에서든 관계에서든, 그것이 사람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물론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관점으로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과 관계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하셨다(시126:5-6). 세상의 명언들에도 인내와 피, 땀 흘린 노력이 배반하지 않고 결실을 가져옴을 시대를 초월하여 말할 정도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이치가 그러함을 믿지 않는 자들마저도 수두룩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을 꿈꾸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것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거나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금세와 내세의 축복을 받을 것은 다 받자. 안하려고 버티느라 결국 못받거나 감질나게 받지 말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고 확실히 받고 누리자. 그 무엇이든 말이다. 할렐루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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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sochur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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