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상담을 배우고 또 상담을 받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나의 모든 문제는 내가 자초한 것이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동안에는 늘 피해의식이 강했고 나의 문제는 늘 누구 탓, 상황 탓, 처지 탓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럴 때가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의 문제를 나 스스로가 자초한다'는 면에서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기에 그러한 가르침이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타인의 시선에서도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조금씩 떠졌고 지금도 조금씩 계속해서 눈을 떠가는 과정 중에 있다. 나의 이런 모습을 타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해보지만 그래도 그런 여유와 시각이 안생길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다보면 나의 생각과 감정, 신념과 확신에는 충실하지만 타인과는 거리가 먼 독불장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비단 필자에게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생활을 하다보면 이러 저러한 상황에서 크리스찬을 종종 만나게 된다. 전도하면서도 만나게 되어 격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상거래 활동을 하면서 만나면서 실망스러울 때도 있는 것 같다. 또는 이웃으로 만났으나 씁쓸할 때도 있다. 차라리 크리스찬인 것을 서로가 몰랐으면 또는 크리스찬인 것을 내세우시지 않았으면 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한 예로, 운전을 할 때에 자동차의 실내에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놓거나 장식을 달아놓은 차들이 가끔 눈에 띌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더욱 모범적으로 운전을 해야하는 것이다. 교통 법규나 기본적인 에티켓을 어기면서도 십자가가 달려있는 차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또한 물건을 하거나 어떤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에도, 필자는 가능한 크리스찬을 통해서 거래를 하려고 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찬이라서 우선권을 주려고 한 것이 후회가 될 때가 많다. 같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다른 곳에 비해서 너무 비싼 값을 주고 사거나 비용을 치르는 경험을 할 때면 참으로 씁쓸할 때가 많다. 얼마전에는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여 담당자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였는데 통화 신호음 음악이 CCM 찬양이어서 반가웠었지만 통화를 하는 내내 불친절하고 무성의함에 나중에는 필자 역시도 담임목사이고 CCM 찬양 소리도 들어서 받가웠다는 이야기까지 전하였으나 끝까지 불친절함에 실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생각해보았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보여질까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고 늘 은혜를 누리면서도 그 기쁨에만 도취한 나머지 그 은혜를 나누기를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상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무관심하고 더 나아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돌아봐야한다. '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요2:17)'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를 향한 우리의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주의하고 돌아볼 일이다. 할렐루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교회와 사역에 대해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misochur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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