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맷집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적 의미는 '매를 견디어 내는 힘이나 정도'이다. 그래서 흔히 실력의 향상, 인내력의 향상, 단단함의 향상을 목표로 삼자는 뜻에서 맷집을 키우자는 말도 사용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러한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어떠할까?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까지 깨어 기도할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어떠했는가?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중략)..이제는 자고 쉬라(마26:41,45)'하셨다. 마음에는 기도하고 싶으나 지금 예수님이 팔려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상황 파악도 안되어 있으며 안일한 마음에 육신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기도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예수님이 잡히자 도망가거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약한 신앙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영적 맷집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우선 육적인 삶, 일상에서의 맷집은 어떻게 키우는가? 예를 들어, 권투 선수를 보자면 경기에서 불가피하고 상대방 선수에게 맞을 수 밖에 없으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육을 키우고 자세 연습을 한다. 또한 맷집을 키우는 이유는, 단순히 잘 맞고 버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공격할 수 있는 순간에 상대방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한 타이밍을 기다리기 위함이 맷집을 키우는 목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학생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든지, 직장인이 자신의 업무에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든, 경제적으로 저축과 투자에 성공하여 경제적인 여유를 갖기 위해서든 우리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며 목표의식이 필요하다. 분명한 목표의식 가운데 적절한 노력을 끝까지 해내는 인내가 달콤한 열매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영적인 삶은 다를까? 사람은 전인적이기에 모든 면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누리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또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절제하고 성령을 따르는 삶 모두가 사실 인내를 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가 없다. 인내하는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있다.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쌓이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육 모든 면에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되 실제의 노력 과정에서는 분명한 목표의식과 인내와 성실함을 갖춘 맷집을 기르자. 분명 우리가 기대하는 그 이상의 기쁨과 열매를 맛보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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