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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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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가 vs 사용자 나는 수집을 좋아했다. 중학생 때 우표 수집을 배워서 수집했던 우표가 지금도 남아있다. 문구류 사프펜슬, 만년필도 몇 종류씩 수집하여 지금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늘 최신형의 가장 성능 좋은 휴대폰으로 교체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다. 지금 교회도 가능한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브랜드의 성능 좋은 카메라, 방송기기를 교회에 두었다. 전자제품 수집이다. 과거엔 신학서적, 경건서적을 읽지는 않으면서도 가치가 있다 싶으면 책을 사서 꽂아두게 된 것이, 나중엔 방 하나를 둘러도 부족해서 거실에 책장을 두면서까지 많은 책들을 가득 채운 적도 있었다. 책 수집이었다. 물론 책은 나중에 거의 다 헌책으로 팔고 현재는 거의 없다. 돌이켜보면, 사람도 수집했던 것 같다. 내 친한 친구 중에는 뭐 잘 하는 친구도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보여지는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여지는 상황들에 일희일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를 창조하시면서 눈도 창조하셨기에 눈으로 보며 생활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기에 좋은 데로 즉 감각데로 살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보이는데로 다 입으로 가져가서 먹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본다면, 건강에 해로울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내 눈에 더 좋게 보여지는데로, 눈을 즐겁게 하는 데로, 눈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데로 살아간다면 단지 본능에 충실하게, 즉 무절제한 욕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뿐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의지적, 이성적인 삶에 가깝다. 감정을..
미움 받을 용기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선량한 사람, 매너가 좋은 사람, 정중한 사람, 예의를 갖춘 사람, 지성인 등등 이런 수식어, 이러한 평가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나 없다. 그런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평가해주는 것과 실제 내가 그러한 책임을 갖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아무리 당장에는 보여지는 모습을 좋게 연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언제나 한결같이 10년, 20년, 아니 죽을 때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언젠가 끝이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실제로 인정해줄만한 인품과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실력만 있어도 되지 않고 그에 걸맞는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사람의 내면과 외면이 일치가 되..
소비로 즐거움을 사지 마라 요즘, 내 생활이 팍팍하기도 하고 또 작년부터 성경적 재정관리에 관심을 가지고 훈련도 받고 그러한 시각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서인지 요즘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느 때 소비하는가? 작년에 청지기 훈련(성경적 재정훈련)을 받을 때 매일 가계부를 쓰는 숙제가 있었다. 소비를 보면 영적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내가 돈을 쓰는 곳에 내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소비의 목적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 있는가? 물론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며 그렇기에 필요한 소비를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해보이는 것 같아도, 이것이 정말로 꼭 필요한 것인가? 과소비가 아닌가? 돌아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적절한 소비는 ..
무슨 보상을 받고 싶은 지를 알아야 받습니다. 최근에 화가 날 일이 있었다. 화가 난 이유를 개인적으로 성찰해보았을 때 내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노력한 보상을 정당하게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일을 내가 보상을 위해서 했었던 것인가? 생각해보았을 때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 소명에 감사한 마음으로 내 할일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노력한 것에 대해 내가 보상을 받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부당한 것이며 죄악이다. 씁쓸한 마음은 남아 있으나 의지적으로 다시 회개해본다. 하나님께 거저 드린다는 마음으로 나의 노력과 헌신을 드린다고 다짐해본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나만 그럴까? 우리는 살면서 무슨 일을 하든 보상을 바란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보상 즉, 결과를 바라고 무슨..
우리에겐 아파할 시간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과 일상생활에서 너무 감정에만 몰입되고 마음에만 빠져있는 채로 삶의 진전을 도외시한 채로 살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멈추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나 자신 조차도 아파하지도 못할 만큼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내가 하나님을, 사람을 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가혹하게 대하는데, 하나님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별 수 있겠는가?우리는 신앙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하나님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난 다음 성장하면서 복음도 듣게 하시고 예수님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지, 구원부터 시작하시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우리의 구원에 대해 예정은 해주셨지만, 그것을 실행하실 때 그냥 한 아기로 태어나 한..
위선자(僞善者)와 위악자(爲惡者) 위선자(僞善者)는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사람이다. 실제로는 착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善)한 마음은 없는데 단지 겉모습만 선한 모습으로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라고 할 수도 있는, 위악자(爲惡者)는 겉으로만 악한 체하는 사람이다. 실제로는 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악(惡)한 마음은 없는데 단지 겉모습만 악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위선자들, 때론 드물게 위악자들을 만나곤 한다. 겉으로는 듣기 좋은 소리, 관심을 표현해주는 위선자들은 사방 천지에 많다. 결국엔 나에게서 인정이든 협조든 어떤 이득이든 무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종의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 반면에, 회사, 학교, 모임, 가족, 집단에서든, 소위 말하는 '군기 반장'과 같은 역할을 ..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유명한 책의 이름이다. 포기하는 대신에 걷는 운동을 통해 암을 극복하는 등 실제로 검증된 사례가 많다. 정신건강에도 좋다. 걸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낮아지고 엔돌핀의 상승으로 기분이 좋아지며 우울증이 개선된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 걸어가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순종과 실천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움직여야 사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몸에 질병이 있고 아플 때는 자리에 눕게 된다. 마음에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조금도 움직일 힘이 없게 된다. 영적으로 불신과 의심이 가득하게 되면 조금도 말씀이 들리지 않으며 당연히 순종과 실천도 없다.  결..
영적 컨테이너(container) 정신분석적 심리상담에서는 컨테이너(container) 요법 또는 봉인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마음 속에 불편한 감정,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에게 매몰되지 않도록 일단 컨테이너 또는 보관함을 상상하여 그 속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열어보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 마음 속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을 컨트럴하고 다스릴 수 있는 심리적 컨테이너 즉, 감정 조절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감정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생각해보면, 사건과 상황에 대한 해석에서 비롯된다. 똑같은 사건,상황이어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좋은 일로 해석되면 기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 질책을 받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가 하면, 어느 누군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정도의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똑같은 상황..
괴롭힘 대신 돌봄으로 우리는 때론 자신을 괴롭힌다. 못마땅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왜 이것밖에 안되지, 왜 못하지, 왜 안되지'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더 나아가 때론 남도 괴롭힌다. '어떻게 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한테 이렇게 밖에 못해? 내가 우습나' 등등의 생각으로 말이다. 때론 약자, 약한 대상도 괴롭힌다. 간혹 애완동물을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때론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동료를 집단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모든 괴롭힘들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는가?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겠다는 마음이 근본에는 있는 것이다. 처벌을 함으로써 그 대상이 내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하도록 또는 하지 않도록 조종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악은, '괴롭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