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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에 머무는 삶 우리는 연약하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도 드러내고 싶지도 않다. 남에게 나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수치스럽고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내면이 그러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나에게 감춰야할 연약함이 많으면 많을 수록 우리는 감출 것이 많아지게 되고 그로 인해 긴장하며 눈치를 살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소진되는 것이며 지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 연약해지는 것이다. 아니 더 연약해지지 않더라도 연약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있다. 감추면 다 인 것인가? 감추면 되는 것인가이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연약함이 나 자신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생각해보시라고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연약함을 좋아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하더..
단순하게 삽시다 우리는 단순한 것에 못견뎌한다. 무언가 자꾸 벌이고 복잡하게 하고 바쁘게 할 때에야만 무언가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정말 그러한가? 실제로는 무엇인가?' 늘 살피고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대답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 자신을 소외, 제외 시킨 채, 나 아닌 것을 나인줄 알고 붙들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가 결국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허탈감에 절망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스스로 속이기가 쉽다. 왜냐하면, 그동안 바쁘게만, 또 바쁘지 않을 것 같으면 일부러 스케줄을 많이 만들어서 바쁘게 살려고 했던 삶이, 실제로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되면 실제 내 자신을 느끼게 될 뿐더러 그동안 숨기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실망스러운 나의 모습까지 드러날까봐 염려하는 ..
아무도 얕잡아 보지 마라. 우리가 살면서 흔히 '상처 받았다'고 말할 때에는, 사람들에게 수용받지 못하고 거절감을 받게 되었을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나 자신 또는 타인에게 찾으면서 주로 약점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약점이 있으면 거절당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약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며 그러한 약점이 있는 나 자신도, 내가 당했던 경험과 똑같이 거절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또 다시 상처를 입히게 된다. 그렇지 않고 외부로, 타인에게로 원인이 돌린다면 늘 약점이 있어 보이는 타인에게 냉담하며 하대하며 공격적일 수 있다. 그래서 약점이 있으면 우리는 은연 중에 얕잡아 보는 면이 있는 것이 사람의 솔직한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얕잡아 보는 렌즈'를 계속 끼고 있게 되..
사탄이 우리를 돕는다. 아니 이 무슨 불경한 말인가? 사탄은 분병 거짓의 아비, 속이고 죽이고 노략질 하는 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 뒤에는 사탄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은 사람이 그러한 일을 일으킨다. 그러니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부추기고 자극하고 장악하는 사탄을 보아야하는 것이다. 사람 뒤에 사탄이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아무리 선량해보이더라도 때에 따라 크고 작은 악인들로 돌변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만큼 사탄의 역사가 많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겠는가(벧전 5:8). 그렇지만 우리가 늘 알것은 사탄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사탄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사람을 통해서든 사건,..
강함을 바라보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보면, 사람의 약점을 기막히게 잘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상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향해 있을 때가 많다. 자신 스스로도 늘 자신의 약점을 살피고 인식하고 있기에, 무언가에 위축된 채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으며, 타인을 상대할 때도 타인의 약점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어 그것으로 기선 제압을 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늘 소진되는 느낌이며 기가 빨리고 힘들어진다. 그에 반해, 어떤 사람을 만나면, 사람의 강점을 기막히 잘 찾아낸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무언가 해낸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구분을, 또 해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을 안다. 그리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시각과 습관을..
대수롭지 않거나 대수롭거나 우리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소중이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보다 덜 자주 쓰이는 것 같으나 '대수롭다'는 말은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대수롭다'는 ‘대사(大事)롭다’이다. 즉, '큰 일스럽다'는 뜻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일을 대수롭게 여기는가? 또 어떤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우리는 그동안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치관에 따라 대수롭게 여기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의 구분이 생겼을 것이다. 그 구분을 짓는 기준은 분명 나에게 중요도에 따라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수로운 것과 대수롭지 않은 것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세상적인 논리로 말하더라도, 칼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이 40세 전 후가 되면 의식과..
해야 할 것은 하고 받아야 할 것은 받자. 우리는 일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이든, 무엇을 주고 받기 위해 한다고 볼 수 있다. 단, 그 목적이 순수한 것일 수도, 거래하기 위한 것일 수도, 불공평한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모두 거래관계라고 보는 것이 속편할 것 같다. 예수님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고 이것을 소위 '황금율'이라고 부른다(마7:12). 남에게 무언가를 대접받고자 하기 전에, 나는 무엇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가를 먼저 돌아보고 먼저 남에게 대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것이 철저히 무언가 이득을 주고 받는 거래관계일지라도 먼저 잘 주어야 내가 잘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남이 나에게 왜 이런 대접을 하느냐로 화를 내기 이전에, ..
끝 맺음을 잘 하는 자와 못하는 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하든 끝을 내는 것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특성에 따라 시작과 끝이 달라지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늘 시작을 잘 한다. 또 동시에 여러 일을 시작하고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끝을 맺어야 할 때에 가서는 끝을 온전히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내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시작을 잘 못한다. 왜냐하면, 한번 시작을 하면 완벽하게, 완성될 때까지, 목표 달성할 때에 끝낼 수 있기에 시작할 엄두를 잘 못낸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을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바람직 한 것은,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기 때문에 시작할 때 잘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결과를 거두어야 할 때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전3:1-2). ..
연결적 사고, 분리적 사고 우리의 사고 방식에는 연결적 사고, 분리적 사고방식이 있다. 연결적 사고 방식은 뭐든 다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을 생각할 때도, 그 사람과 나를, 그 사람과 타인을, 그 사람과 사건을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하고 이 사건을 저 사건과, 이 사건을 저 사람과 연결시켜 생각하기도 하는 등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을 하든 다 연결해서 생각한다. 고민을 해도 연결되어서 생각하는 특성 때문에, 한 번 고민을 시작하면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없이 이어진다. 반면에, 분리적 사고는 모든 걸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의 사고 방식이다. 내 생각, 내 의견, 내 의지가 중요한 것이지 타인의 생각, 판단, 평가가 참고는 될지언정 나에게 큰 의미나 영향력이 적다. 사람과 사람도 분리시켜 독..
크리스천들 '의'경쟁 나는 모태신앙이자 크리스찬으로 지금까지 사십 몇 년을 살아오면서 만난 목사, 장로, 집사, 권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합해서 관찰되는 것 중에 하나는 마치 '누가 옳으냐'의 싸움을 은연 중에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크리스찬이라면 그것도 신앙심이 깊거나 충성도가 높다면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체험, 간증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인 것 같다. 각자 만난 하나님이 다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들이 다들 있는 것이다. 100명의 신실한 크리스천이 있다면 100개의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을 힘있게 말로든 행동으로든 표현한다고 하여서, 나의 확신을 접고 그 사람의 확신을 따라야할 이..